[리뷰]음악을 연료로 드리프트 하는 쾌감, '베이비 드라이버'

[한겨레 토요판 – 영화감별사] 

 

이 영화의 감독이자 각본가인 에드가 라이트의 첫 ‘본격’ 장편영화인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과 그의 친구가 갑자기 집 앞에 나타난 좀비들을 향해 LP 컬렉션들을 집어던지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은 좀비들이 점점 다가오는 나름 급박한 와중에서도 어떤 LP는 던지고 어떤 것은 남길 것인가에 대해 고뇌한다. 집어던진 LP는 전부 산산조각 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종의 음악적 즉결심판이다.

그렇다. 그 세계에서는 어떤 음악을 취하고 버리는가는 죽느냐 사느냐와 맞먹을 만큼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바로 그 감수성, 음악이 명실상부한 삶의 스핀들이던 시대의 감각을 주재료로 삼고 있다. 따라서 카체이스, 범죄작당(=케이퍼≒하이스트), 코메디, 캐릭터 무비 등등의 장르명이 모두 가능한 이 영화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장르명 하나는 바로 ‘음악영화’다. 이 영화에서 음악은 배경에 깔리는 향신료가 아니라 영화를 움직이게 하는 고옥탄가 연료다. 바로 그 점이 이 영화를 수많은 다른 비슷한 카인드오브 영화들과 다르게 만드는 특징이자 핵심이다.

 

 

그것은 영화의 도입부부터 확실하게 선언되고 있다. 이미 인터넷에 통째로 올라와 있는 영화 도입부의 경천동지할 차량도주 시퀀스를, 굳이 지면에서 시시콜콜 상세묘사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동료들이 작업(은행털기)을 마치길 기다리는 주인공 ‘베이비(안셀 엘고트)’의 행동거지다. 그가 선글래스를 끼고 운전석에 앉은 채 이미 희귀 빈티지 아이템이 돼 버린 아이팟에 연결된 이어폰으로 듣고 있는 음악은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젼의 ‘벨 바텀스’. 이에 맞춰 갑자기 혼을 실어 격한 립싱크를 보여주는 베이비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 꽤 뜬금없고 치기어려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사실 이 ‘음악에의 빙의’야말로 베이비 캐릭터의 핵심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오프닝이 끝난 다음에도 음악은 계속된다. 범죄기획자 겸 지휘자인 ‘박사(케빈 스페이시)’가 새 작업팀을 모아놓고 새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하는 동안에도 베이비의 귀에서 이어폰은 빠지지 않는다. 선글래스도 그대로다. 그런 태도가 영 마음에 안 드는 팀원 ‘버디(존 햄)’는 주먹으로 베이비의 선글래스를 날려버리지만, 그는 일말의 동요도 없이 주머니에서 다시 스페어 선글래스를 꺼내 쓴다.

음악과 선글래스와 무표정. 블루스 브라더스와 터미네이터와 맨 인 블랙과 저수지의 개들을 아우르는 화려한 족보에서 베이비는 자신만의 독자성을 확보한다. 마이크로 테이프 녹음기(일명 ‘찍찍이’)와 믹스를 통해서다.

 

 

베이비는 브리핑 도중 찍찍이에 녹음해 온 ‘박사’의 목소리에 자신의 그루브와 멜로디를 입힌다. 그렇게 음악과 믹스되어 동결된 순간들을 담은 테이프들은 박스에 한 가득이다.

그리고 그 박스에는 곧 새로운 테이프가 추가된다. ‘데보라’가 그 제목이다. ‘데보라(릴리 제임스)’는 베이비의 단골 식당에 새로 온 웨이트리스. 베이비는 “베이-비-”라는 가사가 들어간 어떤 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채집한다. 그리고 묻는다. “그 노래, 제목이 뭐예요?” (‘멤피스 소울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던 칼라 토마스의 ‘B-A-B-Y’가 그 곡의 제목이다)

그것이 그들의 만남이다.

그 뒤 베이비의 이름을 알게 된 데보라는, 그와는 달리 자신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노래는 도대체 없다고 푸념한다. 이에 베이비는 재빨리 그녀의 이름이 들어간 노래를 알려준다. 이어 두 사람은 적-청-황의 3원색의 빨래들이 일제히 돌아가는 코인 론드리에서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낀 채 티렉스의 ‘데보라’를 듣는다. (음악은 물론 베이비의 아이팟에 저장돼 있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시작된다.

그리고 한참 뒤 ‘데보라’라는 제목이 적힌 베이비의 테이프는 등장인물 모두의 운명을 바꿔버리는 폭탄이 된다.

그런 식이다. <베이비 드라이버>에서 O.S.T,는 배경에 깔리는 벽지가 아니다. 이 영화의 O.S.T.는 이야기가 얹어지고 사건들이 연결되고 액션이 춤을 추고 자동차들이 드리프트 하는 플로어다. 그렇게 <베이비 드라이버>는 <저수지의 개들> 이후 어떤 식으로든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O.S.T. 사용법에서 확고한 일보 전진을 이루고 있다.

 

 

사정이 그러하니, 영화의 액션 또한 음악에 스텝을 맞춰 춤출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총성이나 경적 소리를 음악에 맞춰서 편집해 넣은 액션 장면은 역시나 기발하다.

사실 감독이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서 보였던 이런 식의 기법적 파격(예를 들면 <뜨거운 녀석들>에서 사용한 ‘타임워프’ 몽타주라든지,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에서의 만화적 자막 CG라든지)은 참신함을 넘어 과도한 재기(才氣)에 가깝다는 위화감이 없지 않았지만, 영화 전체가 음악 위에 얹어져 있는 <베이비 드라이버>에서의 ‘리드미컬 총격전’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더욱이 이 ‘리드미컬 총격전’은, 자신의 참신함에 영화 스스로 감동한 나머지 같은 기법을 계속해서 남발, 끝내 지루함을 유발시키고 마는 우를 범하는 대신 적절한 선에서 자제되고 있어 더 강력한 효과를 득하고 있다.

이 같은 절제의 묘는 액션의 ‘종목’에도 적용된다. 영화는 초반부터 계속된 자동차 도주액션이 슬슬 눈에 익어 지루해지기 시작할 즈음, 베이비가 차가 아닌 발로 뛰어 도주하는 파쿠르 풍 액션 시퀀스를 배치하는 현명함을 발휘하고 있다.

제목에 ‘드라이버’까지 박아 넣은 영화에서 파쿠르 액션을? 하지만 그 액션의 밀도 및 완성도는 자동차 도주 시퀀스와 비교해 결코 밀리지 않아, 영화를 고난도 자동차 스턴트에만 의존하는 단조로운 팔뚝형 액션영화의 범주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나도록 해주고 있다.

그런 의외성이 가장 빛을 발하는 대목은 역시나 이야기 전개에서다. 장르의 규칙을 충실히 따르는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고비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예상을 엎는 전개를 이어가는 감독의 스타일은 다른 영화들에서 익히 봐 온 것들이긴 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헐리우드적 색채 짙은, 이 정도 규모의 상업영화에서 그 엉뚱함이 여전히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음을 보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경험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다. 당신은 어떤 캐릭터가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아마 대부분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외성은, 주인공부터 보조출연급 조연까지 하나하나 개성적이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그 캐릭터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캐스팅과 연기에서의 적절함 또한 이 개성적이고 기발한 ‘음악’ 액션영화에 탄탄한 설득력을 얹고 있음은 물론이다.

특히나 악당적인 무표정함과 소년적인 수줍음이 공존하는 베이비 역의 안셀 엘고트의 마스크와 연기는, 음악과 더불어 이 영화의 양대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다소 겉도는 듯한 행보를 보였던 제이미 폭스 역시 위험한 기운을 땀냄새처럼 발산하는 다혈질 위험남 ‘배츠’ 역을 만나 오랜만에 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케빈 스페이시 역시 오랜만에 제 역할을 만난 느낌인데, 전혀 웃기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웃기거나 전혀 겁주려는 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겁주는 ‘박사’ 캐릭터의 미묘함은 그의 노련한 연기에 크게 빚지고 있다.

그리고 이 지면에는 차마 다 적을 수 없는 각종 크고 작은 재미들이 <베이비 드라이버>가 도는 코너 코너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그것은 사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몸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하여 필자의 키보드는 이쯤에서 파킹.

 

(2017년 9월 2일자 한겨레 토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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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글 잘 봤습니다. 매번 눈팅만 하다가 건의 한 가지 드릴려구요.
    이 사이트는 영화만 전문으로 다루는 사이트라서 그런지 좀 단조로운 거 같아요. …
    다른 글이나 컨텐츠도 보고 싶네요.
    암튼 잘 보고 갑니다. 홧팅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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