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35년만에 응답된 기다림, '블레이드러너 2049'

[한겨레 토요판 – 영화감별사] 

 

<블레이드 러너> 같이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흐름을 이룬 영화의 속편을 만든다는 일의 압박감은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필자를 포함해 전 세계의 얼마나 많은 팬들이 이 영화를 마지막 한 프레임까지 탐식 또 탐식했을 것이며, 그리하여 ‘나의 최고의 영화’로 꼽아왔을 것이며, 또 이 영화의 세계와 그 너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정보와 감상과 상상을 쏟아내 왔을 것인가.

그러니 드니 빌뇌브가 그 속편의 연출을 제안 받고는, “리들리 스콧이 직접 내 앞에서 내 얼굴을 보면서 ‘당신이 연출을 맡아줬으면 한다’라는 얘기를 하지 않으면 나는 깨끗이 물러서겠다”라는 반응을 보였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 기념비적이고도 유일무이한 세계의 창조자의 승인과 환대야말로, ‘잘 해야 본전’의 뇌우폭풍 몰아치는 그 세계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데 있어 무엇보다 튼튼한 우산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드니 빌뇌브와 리들리 스콧만큼이나 주목해야 한 명이 또 있다. 첫 편과 이번 속편의 스토리/시나리오 작가인 햄튼 팬처다. 특이하다면 특이한 것은, 이 사람이 원작자인 필립 K. 딕의 작품은 물론이고 SF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작가라는 점이다. 공동 시나리오 작가인 마이클 그린(<에일리언: 커버넌트>, <로건> 등)이 ‘어쩌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게 된 시인’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아름다운 대사들을 쓰는 이 작가가 <블레이드 러너>에 가져온 세계는 결국, 레이먼드 챈들러를 위시한 하드보일드 작가들의 세계다. 덕분에 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첫 편과 마찬가지로 하드보일드 적(또는 필름느와르 적) 분위기와 전개가, 산성비와 스모그만큼이나 짙고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사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첫 편의 이야기 구조를 큰 흐름에서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화면 가득 첫 편에 대한 존경심 담은 안구(眼球) 익스트림 클로우즈업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물론이려니와, 도주 레플리컨트와의 격투 – 경찰간부의 사건 의뢰(라기보다는 명령) – 주인공의 타이렐 피라미드 방문 – 단서를 쫒는 탐문과 불의의 공격 – 이어지는 실마리들과 죽음들 – 그리고 마침내, 텅 빈 저택에서 몸과 몸이 부딪치는 육탄전 등등은, 끊임없이 전편과 겹치며 묘한 기시감을 만들어낸다.

이는 또한 이야기에만 국한되지도 않는다. 속편은 첫 편의 시간배경이었던 2019년 11월로부터 30년이 지난 시간을 반영하여 첫 편의 모티브들을 계속해서 인용한다. 리들리 스콧이 한때 체류했던 일본의 풍경들을 첫 편 곳곳에 뿌려두었던 것처럼, 드니 빌뇌브는 자신의 고국인 캐나다의 추위와 눈을 영화 곳곳에 심어두고 있다. ‘레플리컨트(합성인간)’인지 여부를 식별해내는 ‘보이트캄프 테스트’는 레플리컨트의 안전성 여부를 검사하는 ‘기준선 검사’로 변해있다. 거대한 디스플레이를 매단 채 끝없이 LA 상공을 떠돌던 광고용 기구는, 빌딩 벽에서 곧장 튀어나오는 거대한 반응형 홀로그램 광고로, 종이접기 유니콘은 목각 말 인형으로 바뀌어 나온다.

심지어 첫 편의 것이 그대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제는 요양원의 노인이 된 첫 편의 미스테리한 형사인 ‘개프(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는, 챈들러 소설에 등장할 법한 썬포치에서 여전히 종이접기를 하며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편에서 ‘데커드(해리슨 포드)’와 ‘레이첼(숀 영)’가 처음 만나 나눈 대화, 그리고 보이트캄프 테스트에서 나눈 질문과 답은 원본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라는 ‘타이렐 박사(조 터클)’의 모토까지도 그대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블레이드러너 2049>의 세계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속편의 가장 탁월한 점은 전편의 위대한 성취와의 연속성을 깨뜨리지 않는 동시에, 그 무게에 조금도 짓눌리지 않은 채 자신만의 영토를 확립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첫 장면에서부터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속편은 첫 편과 같이 검은 바탕의 도입부 자막, 그리고 이어지는 안구의 클로우즈업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 뒤에 곧바로 안드레아스 거스키(사진작가)의 작품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미래 LA-캘리포니아의 발전시설, 합성농지의 거대하고도 압도적인 전경을 보여주며 첫 편과의 차별성을 드러낸다. 그 뒤로도 영화는 줄곧 대칭과 반복, 색채와 무채색, 빛과 그림자, 여백과 집중 같은, 디지털 시대 이전의 기본적인 시각원리들을 십분 활용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 속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자욱한 안개 속 죽은 나무, <에일리언 3>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적갈색 녹으로 가득 찬 폐기물 집하장, <샤이닝>의 오버룩 호텔의 골드룸과 첫 편의 브래드버리 빌딩을 합쳐놓은 듯한 버려진 카지노 등을 배경으로 드니 빌뇌브와 전설적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가 빚어내는 시각적 경이는 마르지 않는 폭포처럼 쏟아진다. 그 중 가장 돋보이는 장소는 새로운 주인인 ‘니안더 월레스(자레드 레토)’가 지배하는 타이렐 피라미드의 내부일 것이다. 수면에 반사된 빛, 세트의 구조와 조명의 움직임을 이용한 그림자 등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장면들은, ‘최대한 디지털을 배제한다’는 감독의 원칙이 어떤 시각적 성취를 낳고 있는지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시각적인 힘은 그만큼이나 힘 있고 섬세하게 짜 넣어진 음향효과에 의해 한층 증폭된다. 첫 편이 반젤리스의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혁신적이었던 음악 뿐 아니라, 독창적이고도 과감한 음향의 사용(예컨대 횡단보도 신호기의 안내음이라든가 혼잡한 길거리의 소음, 그리고 유전자 기술자의 고독한 집안에 울려 퍼지는 신경질적인 웃음소리 같은 것들)에 의해 쉽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감각적 경험을 만들어냈듯, 속편 역시 귓전에서 튕겨나가는 대신 의식 밑바닥까지 뚫고 들어오는 듯한 독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비길 데 없이 열광적이고 까다로운 첫 편의 팬들마저도 <블레이드 러너 2049>를 기꺼이 첫 편의 부족함 없는 적자로, 심지어 진일보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요소는 무엇보다 이 영화의 잘 짜인 이야기와 그것이 품은 몇 겹의 깊이일 것이다.

추적을 피해 숨어 지내는 구형 레플리컨트를 색출해 ‘은퇴’시키는 과정에서 발견된 ‘기적’의 흔적과, 그것이 품은 비밀을 추적해가는 주인공 ‘K’의 모습은 영락없이 2049년 한가운데에 던져진 필립 말로우나 샘 스페이드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가 발견하는 것은, 화려한 부유함 밑에서 썩어가는 탐욕의 얼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이 될 모든 조건을 갖추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라는 사이버펑크의 일관된 질문이다.

이 질문까지 나아가는 과정에서 K가 움켜쥔 가장 결정적인 단서는 다름 아닌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하지만 K는 레플리컨트다(맞다. 속편은 첫 편과는 달리 주인공 K가 레플리컨트임을 처음부터 명백히 밝힌다). ‘제조’된 그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다. 결국 그는 자기 것이 아닌 자기 기억을 단서로, 실제로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추적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심지어 ‘제조’에 관한 기록조차 없다. 며칠 동안이나 세상을 암흑으로 만든 한 차례의 ‘대정전’으로 인해 인류 전체가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K는 백지 위에 놓인 공산품이다. 그런 K의 모습은, 끝없이 눈이 쌓이는 성에서 자신의 내면 속을 맴도는『성』의 주인공 ‘K’를 떠올리게 한다(실제로 2049년의 LA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몰아치는 파도를 막기 위한 거대한 벽이 둘러져 있고, 끊임없이 진눈깨비와 눈이 내리고 있다).

하지만 배경도 과거도 알 수 없는 측량기사인 『성』의 ‘K’와는 달리, 하드보일드의 세계를 떠도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K는 결국 자신의 기억과 과거의 실체를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끝은 아니다. 첫 편의 데커드의 곁에 레이첼이 있었던 것처럼, K의 곁에는 인공지능 애인 ‘조이’가 있다.

언뜻 조이는 홀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형체가 있다는 점만 다를 뿐, <그녀>의 인공지능 OS ‘사만다’의 변형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존재가 드러내는 현실은 훨씬 냉정하고 외롭다. 그 외로움은 K에게 던진 그녀의 “사랑해요”를, “우리 제품에 만족하셨길”이라는 말로 튕겨내는 니안더 월레스의 심복 ‘러브(실비아 혹스)’의 폭력적 냉소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게 조이가 던진 사랑의 의미에 관한 질문은, 영화의 1시간 40분여가 경과한 시점에서 등장하게 되는 데커드에게 이어지며, 마침내 1편과 더할 나위 없이 절묘하게 조응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쓸쓸하다. 2049년의 지구(그곳은 이미 사라진 회사인 팬암 항공사가 여전히 건재해 있는 평행현실이다)에선 온난화, 오염, 자연파괴, 극단적 빈부격차 같이 현재의 우리에게 근심인 모든 일들이 이미 삶의 기본조건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살아있는 나무는커녕 자연산 나무토막조차도 귀한 물건이 되어버린 필립 K. 딕의 냉소 어린 황량한 비전속에서, 진짜 인간은 여전히 눈 먼 야망을 실현시키려 눈 먼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 그 반대편에선 인간의 복제품인 레플리컨트들은 인간이 언젠가부터 저주로 여기기 시작한 축복 또는 기적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다.

그 임박한 반란의 예감 속에서, 레플리컨트 K는 가장 인간적인 것을 위해 몸을 던진다. 일찍이 ‘로이(룻거 하우어)’가 자신의 친구들을 모두 ‘은퇴’시킨 데커드를 추락에서 건져냄으로써 그랬던 것처럼, K 또한 이 차갑고 쓸쓸한 행성에게 눈물의 온기를 일깨운다.

그렇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이라는 타이렐 박사의 예언적 모토는 30년 만에 다시 한 번 실현된다.

 

  여담    속편에서는 ‘행운’, ‘독수리’ 등의 한글간판 뿐 아니라 한국어 배경음까지 삽입되어있다. 그런데 첫 편에도 순간적이지만 한국어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지? 그 한국어는 ‘수수께끼 사이’라는, 그 자체로 수수께끼스러운 단어다. 이 한글이 어느 장면에서 등장하는지 이미 알고 계시다면 본인을 확실한 <블레이드러너> ‘신도’로 여기셔도 좋을 듯.

 

(2017년 10월 14일자 한겨레 토요판)

3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개인적으로 라이언 고슬링 눈빛과 무스탕 2개로 기억될 영화 같습니다^^ 그리고 일반 상영관이랑 아이맥스 2개 포맷으로 봤는데 아이맥스 상당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하나 궁금한 점이 이 영화에서 레플리컨트로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짧게 나오는 레지스탕스 세력을 제외하면 한번 이상씩 눈물을 흘리던데 데커드가 눈물 흘리는 장면을 보고 레플리칸트 맞나보다 했습니다 ㅎㅎ..

    • 맞습니다. 이 영화는 아이맥스로 볼 이유가 충분한 영화죠.
      저도 아이맥스 추천입니다.

      그리고 레플리컨트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되짚어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요. 기억이 가물가물 하네요. ^^ 하긴 누가 인간이고 누가 레플리컨트인지 영화를 다 본 뒤에도 칼같이 잘라 말할 수 없긴 하지만..

      다시 보게 되면 그 부분도 짚어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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