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저스티스 리그'의 저스티스를 찾아서

[한겨레 토요판 – 영화감별사] 

 

봉 전날까지의 엠바고(보도제한)까지 걸고 언론에 공개되었던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난 뒤에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그 엠바고가 충분히 이유 있어 보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절대로 사전 누설되어서는 안 될 엄청난 반전 같은 것이 함유되어 있다거나 했다는 건 아니고, 이 정도 화려한 캐스팅과 이 정도 예산(약 3억 달러)과 이 정도 사전홍보를 앞세운 영화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 같아도 그러고 싶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얘기다.

뭐, 아직 엠바고 해제 이틀 전인 현재, 보아하니 SNS나 블로그 등 일부에서는 ‘엠바고 해제’라며 리뷰를 자처하는 커멘트들이 유통되고 있는 것 같다만, 다들 서명까지 해가면서 서약해야 했던 그 엠바고의 ‘해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그 내용을 보면 충분히 짐작이 가는 바 있다.

그런 것 뿐 아니라 현재 <저스티스 리그>의 예매율 등을 놓고 볼 때도, 이 칼럼이 지면에 나갈 때쯤이면 이 영화의 완성도 및 재미에 대한 상당히 무성한 이야기가 이미 나와 있을 것이라 예상되고, 또한 그 이야기들이 ‘논란’이라는 타이틀로 유통되면서 ‘도대체 어떻기에?’라는 노이즈마켓 풍 수요가 새로이 발생되는 등의 흐름도 다소간 예상된다.

하여, 어차피 많은 분들이 관람료와 시간을 들여서 본 영화라면, 그것을 ‘잃어버린 119분’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건질 수 있는 영양가를 최대한 추출해내 ‘그래도 이건 건진 119분’으로 전화위복시키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에 ‘볼거리가 풍부하다’라는, 모든 고예산 망작들이 앞세우는 방어쉴드를 제외한 <저스티스 리그>의 특장점을 꼽아보고자 한다.

 

 

일단 <저스티스 리그>는 무엇보다도, 현재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고만 있는 부자만능주의에 대한 본의 아닌 경종을 울리고 있어 돋보인다. 이는 원더우먼, 슈퍼맨과 더불어 이 영화의 중심캐릭터 3인방을 이루고 있는 배트맨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배트맨≒브루스 웨인은 부자다. 영화의 대사를 빌리면 다음과 같다.

“배트맨 형님의 슈퍼파워는 뭐세요?”
“나 부자야.”

그렇다. 마블 코믹스 소속 아이언맨=토니 스타크가 그러하듯, 배트맨 최고의 슈퍼파워는 돈(그리고 그를 기반으로 실현해낸 최첨단 개인화 무기들)이다. DC 코믹스가 DC 유니버스 프랜차이즈를 만들기로 작정, 보유 캐릭터들을 그에 걸맞게 재탄생시킨 뒤, 마침내 <저스티스 리그>라는 종합운동장에 일괄수용하는 과정 내내 배트맨의 슈퍼파워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그의 관할구역, 그리고 그와 함께 뛰노니는 동료들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전편 격이라 할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자신의 구역인 고담시를 벗어나 타 도시로 구역을 확장할 경우, 카리스마 및 매력 및 액션력이 급격히 저하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던 배트맨은, 이번엔 체르노빌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폐 원전이 있는 러시아 마을까지 활동영역을 넓힘으로써 극도로 저조해진 카리스마와 액션력의 한계를 노출하게 된다.

 

 

뭐, 워낙에 두서와 앞뒤 없이 뒤죽박죽 전개되는지라 상세한 상황전달은 쉽지 않다만, 아무튼 절대반지 대신 절대상자(‘마더박스’가 그 공식명칭) 3개를 모아 지구에 지옥을 실현시키려는 이 영화의 악의 축 ‘스테픈울프’ 및 그의 휘하에 있는 크롬도금 파리맨들과의 최후대결에서 배트맨은 대형수송선과 배트모빌에 탑승한 채 미사일을 흩뿌리며 분발하는 듯 보이나, 이내 집중공격을 받고는 배트모빌의 사출좌석을 곧바로 작동, 탈출하여 거의 사망 직전까지 몰리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그러나 나름 포스터의 중앙부를 점유하고 있는 핵심캐릭터인 배트맨이 그리 허망하게 사망치 아니하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 그는 곧바로 타 슈퍼히어로에 의해 응급구조 되고 있지만, 문제는 그의 생존여부가 아니라 무기력한 액션과 무너진 카리스마인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배트맨의 초라한 액션력은 최후의 대결 이전에도 계속하여 노출되고 있는 바, 타 주요 캐릭터들에게 종종 구타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나름 회심의 일타로서 내놓은 ‘나이트 크롤러’라는 이름의 거미형 전차는, 악의 축의 내습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방어하지도 못한 채 등장 캐릭터들의 단체 탈출용 구명선 정도의 역할에 머물고 만다.

그나마 이 장비를 운전하는 것은 배트맨도 아닌 ‘사이보그’라는 후배급 캐릭터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배트맨이 처한 이러한 난관은 ‘사우론(<반지의 제왕>의 악의 축)’의 초등학적 버전인 듯 거의 ‘악마 아들’에 가까운 ‘스테픈울프’는 물론, 아마존의 공주, 바다의 왕자, 온 몸이 외계물질로 만들어진 자유자재 변신기계 소년 등, 다들 워낙에 신에 가까운 슈퍼파워를 보여주는 적 및 동료들과 함께 있음으로 인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데, 그리하여 우리는 영화 내내 목격하고 체감하게 된다. 배트맨의 슈퍼파워인 돈은, 전용 제트기에서 원더우먼에게 값비싼 스카치 한 잔을 따라주는 것 정도 말고는 거의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함을.

그렇게 <저스티스 리그>는 토니 스타크 등의 캐릭터들이 이제껏 은연중에 전파하여 온, 슈퍼리치가 곧 슈퍼파워라는 부자만능주의를 의도치 아니하게 매우 효과적으로 비판 및 불식시키고 있다.

 

 

이런 장점 하나 발굴해내는 것만도 상당히 힘에 부친다만, 남아있는 우리들의 지혜 모아 <저스티스 리그>의 영양가 포인트를 한 가지만 더 찾아보자.

우리는 이 영화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무한경쟁 무한양극화 세계에 만연한 좌절과 절망에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수 있겠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주의. 이것이 대체 스포일러나 될 것인지는 다분히 의심스럽다만)

그렇다. 이는 물론 전편 격인 <배트맨 대 슈퍼맨>에서 장렬하고도 거한 사망을 했던 슈퍼맨에 대한 얘기인 바, 영화는 도입부부터 런던 브리지 한가운데에 걸린 슈퍼맨 추모용 대형조기(弔旗)나 뉴욕 한가운데에 마련된 슈퍼맨 추모공원에 헌화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와 맞물려 장엄한 슬로우모션을 통해 제시되는 강도, 깡패, 노숙자 등 도탄에 빠진 뉴욕시민들의 모습을 통해 슈퍼맨의 부활을 예고한다.

비록 <저스티스 리그>의 포스터에서는 스포일러 회피를 위함인지 슈퍼맨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만, 우리는 이미 <배트맨 대 슈퍼맨>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부활이 예고되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이미 기정사실에 가깝던 슈퍼맨의 부활은, 악의 축을 ‘우리들끼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음을, 말 그대로 온몸 통해 깨달은 배트맨의 발 빠르고도 강력한 주장에 의해 입안되고 실행된다.

 

 

이 역시 스포일러 우려로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으련다만, 슈퍼맨의 부활공정은 거의 컵라면 조리법을 방불케 할 만큼 빠르고도 간편한데, 그 마무리는 장엄 슬로우모션을 간판 테크닉으로 보유한 감독의 연출작에 출연한 덕분에 상당히 애호 받고 있는 고속이동 캐릭터인 ‘플래시’가 역시나 맡고 있다.

그런데 이제껏 그리도 장엄하게 조의를 표하였던 캐릭터가 그리도 빠르고 간편하게 부활하는 것이 내심 스스로도 민망했던지, 영화는 되살아난 슈퍼맨이 예전의 그 슈퍼맨이 아닌 ‘좀비 슈퍼맨(그렇다. 실제로 영화에서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일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을 연출한다. 하지만 다른 캐릭터도 아닌 슈퍼맨이 좀비 되어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는 상황이 계속되리라 생각할 관객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이 영화의 몇 안 되는 현명한 판단에 의해, 그 상황 또한 금세 정리정돈 된다. 부활 과정만큼이나 빠르고 간편한 방법으로 슈퍼맨은 원래 그 슈퍼맨으로 돌아와 이글이는 석양에 망토자락 휘날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얻게 된다.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그리고 심지어는 죽더라도 되살아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희망찬 교훈을.

 

 

아, 그러고 보니 <저스티스 리그>의 특장점은 또 있다. 이 영화가 제레미 아이언스, 다이안 레인, J.K. 시몬스, 빌리 크루덥 같은 원로급 유명배우들을 다수 캐스팅하고 있는 것도 상당히 긍정적인 대목이라 하겠다.

물론 이 배우들의 등장비중은 전혀 크지 않고, 특히나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하는 ‘알프레도’는 브루스 웨인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거의 스스로 움직이는 법이 없는 복지부동무사안일자기계발적인 캐릭터로 변모하긴 했다만, 그래도 이런 배우들을 이런 고예산 배정된 영화에 캐스팅함으로써, 작은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준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캐스팅은 <저스티스 리그>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저스티스 중 하나였다 하겠다.

한국 영화에도 한시 바삐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저스티스 리그>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역시나 들지 않지만.

 

(2017년 11월 18일자 한겨레 토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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